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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간을 기억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합니다. 
모두가 사랑했던 것들을 종이에 담아내거나 소리로 그리움을 기억하고, 때로는 눈과

귀를 통해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간을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공간 속 시간, 시간 속 공간> 부스에서는 조선, 근대, 현대 속 사람들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어떤 공간을 살아왔는지를 소개하려 합니다. 그림, 노래, 영화 속에 녹아있는 사람과 공간의 시너지를 확인해보세요. 우리가 예술로 승화시킨 공간을 다시 현실로 가져와 살펴보면 그간의 한국이 어떤 공간의 집합체였는지를 느끼고 한국이 미래로 가는 길의 방향성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번 온라인 전시 공간이 여러분들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공간 속 시간,

시간 속 공간

신윤복 단오풍정.png

1-1. 조선 

        신윤복

# ‘단오풍정’과 시냇가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은 국보 제135호로 지정된 <혜원전신첩>의 장면 중 하나로, 단옷날 그네타기 놀이를 나온 여러 명의 여인이 시냇가에 그네를 타고 냇물에 몸을 씻으며 즐기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가늘고 섬세한 필선과 아름다운 색채가 세련되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는, 신윤복의 화풍이 고스란히 드러난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신윤복은 양반 사회의 풍류, 그리고 남녀 간의 애정과 사랑 등을 주제로 풍속화를 그렸습니다. 등장인물을 갸름한 얼굴에 눈꼬리가 올라가게 표현함으로써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들며, 인물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주위 배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 청계천이 흘러온 시간

조선시대 청계천 수표교 모습 (1891~1930).png
현재 청계천 모습.png

청계천(淸溪川)은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구와 중구와의 경계를 흐르는 하천을 의미하며, 옛 지명은 ‘개천(開川)’이었습니다. ‘개천’은 청계천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와 같이 쓰였습니다. 조선 시대 이전에는 애물단지로 여겨졌지만, 조선 초기 태종이 한양으로 다시 천도한 뒤 본격적으로 정비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하나의 사회의 장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한강과 같이 조선의 한양을 남북으로 나누는 것은 개천의 역할이었으며, 이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청계천의 다리 밑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청계천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 기능하기도 하였습니다.

1-2. 조선 

        김홍도

김홍도 _부상도_.png

# 김홍도의 <부상도>를 통해 한양도성을 엿보다.

그림은 당시 사람들의 생활사를 파악할 수 있는 무척이나 귀중한 자료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그려진 것들을 통해 그 시대의 구체적인 생활상이나 전반적인 분위기 등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는 풍속화의 거장인 김홍도의 작품을 통해 조선 시대 공간을 엿보고자 합니다.

저희가 소개할 김홍도의 작품은 ‘부상도’입니다. 이 그림은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 호암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부상도’는 무거운 봇짐을 지고 성벽 밑을 지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입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이들은 봇짐을 짊어진 상인으로 김홍도가 지나가는 길에 보았던 인상 깊었던 장면을 그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완만한 경사의 긴장감 속에서 두 가지 형식으로 다르게 표현한 성벽과 두 인물의 자세가 적절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점에서 회화적인 묘미를 드러냅니다.

# 봇짐장수의 목적지, 한양도성

<부상도>에서 주목할 공간은 바로 한양도성입니다. 한양도성은 조선 시대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성으로 국가의 상징임과 동시에 정치, 군사, 문화, 경제 등의 중심지로 상업이 매우 발달한 공간이었습니다.

서울종로 서울시가전경.png

2. 근대 

        <목포의 눈물>

"일제 강점기, 한(恨)과 설움의 공간을 소리에 담아내다."

목포의 눈물 앨범 앞표지.png

# 음악과 공간의 연(緣)

19세기 말 근대화와 함께 음악은 대중들의 예술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음악은 시대의 변천사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그 당시 정서를 제목이나 가사를 통해 직접 표현하거나, 상황과 감정 묘사로 간접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수많은 노래와 공간 속에서 저희는 근대 시기의 특징을 잘 담아낸 <목포의 눈물>이라는 곡을 통해 ‘목포’라는 지역이 담고 있는 공간적 의미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 한(恨)과 설움, 소리로 남다.

목포의 눈물 노래비.png

<목포의 눈물>은 나라 잃은 슬픔의 상징이자 향토의 노래를 넘어 일본에 대한 저항 의지를 담아낸 곡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목포’라는 개항의 공간에서 바라본 이별, 애환 등의 감정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대중가요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람들은 ‘목포의 눈물’을 사랑합니다. 해태 타이거즈(현 기아 타이거즈)의 공식 응원가로 사용되었으며, 일제 대중가요에 영향을 받은 트로트의 열풍으로 가수들이 다양한 버전으로 <목포의 눈물>을 부르는 모습은 ‘목포의 눈물’의 여전한 인기를 실감 나게 합니다. 놀랍게도 이 곡이 발표 당시 일본인에게도 적지 않은 사랑을 받았으며 여러 번 일본어로 다시 불려왔습니다. <목포의 눈물>은 표면적으로는 사랑 노래이지만, 그 이면에는 일제 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과 이별의 아픔을 담은 곡입니다. 단순 대중가요가 아닌 한과 국민의 정서를 아우르는 민족의 노래가 되어 여전히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사람들의 한을 노래한 <목포의 눈물>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고통과 당시 사람들의 고뇌를 담은 이상의 < 신기한 물건이 있는 상점에서 >, <회한의 장>이 궁금하다면 부스 A <도시기억법>에서 구체적인 도시공간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가사에 드러난 우리의 공간 : ‘목포‘의 이야기

일본은 근대화라는 대외적인 명분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왔지만, 이 시기에 발전된 지역 대부분은 우리의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목포는 전등 하나 없어 암흑 같았던 곳이자 우리 것을 빼앗기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이별했던 공간으로 <목포의 눈물>의 가사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한과 설움의 감정을 노래합니다.

목포의 눈물 - 노적봉.png
기생충 포스터.png

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 지하실이 사람 사는 '반지하'가 되기까지

반지하는 처음부터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1970년, 한국 정부는 건축법 제 22조의 3에 ‘건축주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의 건축물을 건축하고자 할 때는 지하층을 설치하여야 한다’라는 규정을 신설하면서 주택에 지하실 설치를 의무화합니다. 전쟁 발발 등의 유사시를 대비하여 대피소로 사용하기 위함이 주목적이었고 때로는 보일러실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주택 밑 지하 공간은 70년대에 등장했지만, 사람이 살 수 있는 기본 시설이 갖춰진 집은 아니었습니다. 물건을 보관하며 만약을 대비하는 창고가 당시 70년대 반지하의 역할이었던 것입니다.

3. 현대

영화 <기생충>이 사는 곳, 반지하

# 영화 <기생충>과 반지하

2019년 개봉한 영화 <기생충>은 기택 가족과 박사장 가족을 통해 계급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국내외에서 흥행에 성공하고 각종 상을 휩쓴 <기생충>과 더불어 주목받은 한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반지하입니다.

기생충 스틸컷.png

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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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지하의 현주소

기택 가족이 사는 반지하는 그들처럼 형편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시작했으나 어느 순간 발전의 흐름이 멈춰버렸습니다. 2005년 주차난으로 건물의 1층에 주차장을 만들면서 반지하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게다가 햇빛이 부족하여 생긴 곰팡이로 주거자들의 호흡기 건강이 위협받고 장마철에 막대한 침수 피해를 겪게 되자 반지하는 점점 사회 문제로 여겨집니다.

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기생충 스틸컷 2.png

출처_네이버 영화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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